이상엽「변경의 역사」출판기념 토크 @일우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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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변경의 역사』 출판 기념 토크

 

장소 일우스페이스

일시 2016.3.5.

패널 이상엽 사진가, 강홍구 미술가, 김정은 IANN 편집장

사회 서정임 미술칼럼니스트

 

서정임(이하 서). 이상엽 사진가의 『변경의 역사』 출판 기념 토크는 이상엽이 어떤 의도로 <변경의 역사>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는지, 강화도 돈대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일우스페이스의 전시 디스플레이와 그 의도를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강홍구 미술가와의 협업, 책의 구성 방식 등 사진집 제작 과정에 대한 여러 실험적 요소들을 소개하는 세션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늘 참석한 이상엽 사진가와 강홍구 미술가, 김정은 IANN 편집장을 소개한다. (일제히 인사)

서. 먼저 이상엽 사진가가 오랫동안 주목해 온 우리 사회의 ‘변경’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상엽(이하 이). 십여 년 전 변경학(transnational)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었다. 근대기 땅은 국가의 개념이 생기면서 모던라인으로 나뉘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대부분 면적으로만 존재했다. 중앙에서 더 먼 곳, 그곳이 하나의 땅으로서 규정되었다. 그런 그들의 삶, 중심과 변경은 어떠한 차이가 있고 그것에 대한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영역이 변경학이다. 나는 이 작업을 하다가 약 7~8년 전 DMZ에서의 취재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전시 <이상한 숲>을 열었다. 두 번째는 3년 전에 한 <변경>이라는 전시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공부해 나가면서 사진 작업들을 탐구했다. 이번 <변경의 역사> 신작은 지난 한 해 동안 강화도의 돈대를 소재로 삼아 변경이라는 것이 어떤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한 것이다. 나에게는 이 작품들이 변경 시리즈의 세 번째 버전이다.

 

이상엽이 주목한 변경_돈대 없는 돈대 사진

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변경 중에서도 이번 신작에서 강화도 돈대, 그곳에 새겨진 역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올해 2월 27일은 조선이 처음으로 국제 조약을 맺게 되는 사건인 강화도 조약 140년이었다. 사실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 이전에도 외세들은 강화도를 통해 침입했었다. 동해안으로 접근하기에는 태백산맥 때문에 불가능했고,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한강 하구 가장 가까운 곳에 강화도가 있었다. 이곳을 점령하면 곡식을 실어 나르는 모든 세곡선(稅穀船)들의 통로가 막히게 되었다. 그래서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는 아주 중요한 요충지이자 변경이었다. 300년 전 숙종은 이 자리에 54개의 돈대를 건축했으나 200년이 지나며 무용지물이 되었고 한국전 이후부터는 강화도에 주둔한 해병대가 군부대로 사용했다. 최근에는 민통선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황해도가 보이는 자리의 약 10여 개 돈대만 해병대들이 이용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는 돈대들은 사람들의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서. 신작에는 돈대를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돈대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기록적 성향보다는 작가의 시선과 감정이 표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말로는 돈대 작업이라고 해 놓고 돈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몇 점 없다. 내가 돈대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돈대에서 근무하는 과거의 조선 초병이 되던 지금의 해병대원이 되던 나는 바로 저 안에서 바깥의 세계, 사물들을 보려고 했다.

강홍구(이하 강). 이상엽 사진가가 나에게 자신의 작품에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 후, 그에게서 작품 파일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그 작품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트적으로 바뀌었고 돈대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엽 사진가의 시선, 군인의 시선 그리고 해병의 시선이 겹치는 지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찍어도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서. 작가가 기존에 해 왔던 방식을 잠시 뒤로 미루고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점에 대해 강홍구 미술가는 이상엽 사진가에게 여러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강. 돈대를 찍겠다고 계획을 세워도 막상 현장에 가면 완전히 다르다. 촬영 과정에서 그 계획은 끝없이 수정된다. 그런 면에서 이상엽 사진가가 전에 했던 다큐 사진과는 다르게 아트 다큐적 성향으로 전환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기록적 성향보다는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 또는 감정을 표현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증폭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란 듯이 의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도해서 얻은 것은 뭐고 잃은 것은 뭔지, 작가가 제일 잘 안다. 그런 얘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

이. 아트다큐멘터리, 곤혹스러운 표현이다. 처음 사진을 한 이후로 10년 정도, 2000년 전까지 정말 포토저널리즘에 충실했다. 그때 IMF가 터지면서 매체에만 의존해서 작업하기에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가 발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이었다. 이후 10년 동안은 책 만들고 공부하고 찍고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때부터 내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는데, 나 역시 당시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문법에 굉장히 충실했었다. 그리고 내 관심은 늘 사람에게 가 있었고, 사회적인 변화, 고통 이런 것들에 천착했던 것 같다. 그런데 2010년 이후에는 사진의 변화를 계속 고민했다. 특히 ‘변경’ 작업을 하면서 내가 가진 다큐멘터리는 너무 고전적이지 않나, 그 고정적인 프레임 안에서 사회의 변화에 의한 내용성만 교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신작에 무슨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실제 풍경보다는 어둡게 하려고 암실 안에서 가능한 콘트라스트, 채도 정도를 변화시켰다. 현실보다 어두운 이유는 내가 어둡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작업은 누구에게 의뢰를 받는다거나 이 취재를 바탕으로 기고했다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고 순수하게 이 작업만을 위해서 만든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돈은 없었다. 돈이 없으니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파견예술인이라는 예술인 공공근로를 신청해서 작업했다.

 

사진집과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물리학과 역사

강. 과학과 역사가 사진집 전체를 관통한다. 그리고 사진집 전체의 운영 방식이 일종의 수미일관하다고 할까? 여기에서 굉장히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찌 보면 빨리 읽히기도 하고.

이. 내가 거기에 약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예술적이면 그것을 슬쩍 흘려 놓고 관객들과 게임을 할 텐데 나는 그것을 수미일관하게, 다시 말해 논리적이지 않으면 참지를 못한다.

강. 그래 그게 이상엽이다. 그걸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

서. 게다가 이번 일우스페이스의 전시는 이전과는 다르게 분할화면으로 배치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도를 한 것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전시장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4점은 돈대 안에서 본 풍경이다. 돈대 안에서 누군가가 불침번을 서고 있다가 저 풍경을 봤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는 시간이니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시간을 비가약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시간은 뒤로는 못 가고 앞으로만 가는 것처럼 보이고 굉장히 매끄러운 것으로 보지만, 물리학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주 미세하게 들어가면 고르지 않고 불규칙하고 찢어진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 액자 구성을 통해 매끄러운 시공간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저렇게 보이면 요즘 많은 미술전시에서 액자가 쪼개져 있으니까 어떤 이들은 저 인간 좀 멋을 냈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서. 실제로 이런 부분에 대해 약간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없었나?

이. 나처럼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하면 윗세대 선생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사람들 관점과 조언들이 하나하나 소중하지만 평균이라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요즘의 내 공부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서. 강홍구 미술가는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 사진집에는 <망월돈대 강화도 2015>가 한 장으로 실렸는데, 일우스페이스 전시에서는 세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아 이거 재밌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도시가 개발되면서 나타나는 묘한 분위기와 참 맞아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실 저걸 쪼개서 그사이를 떨어뜨려 놨는데 처음에는 그 조각들을 위아래로 엇갈리게 배치하려고 했다. 그런데 누구 작품이 기억이 나더라. 강홍구(웃음)

 

 

이상엽 사진에 그린 강홍구의 밥그릇과 횃불

서. 『변경의 역사』 사진집의 앞표지와 뒤표지의 이미지는 이상엽 사진가가 찍은 사진 위에 강홍구 미술가가 그림을 그린 것이다. 강홍구는 앞표지의 사진에 밥그릇 두 개를, 뒤표지에는 횃불 두 개를 그렸는데 그 의도를 듣고 싶다.

강. 이상엽 사진가가 나에게 전작의 이미지를 보내며 그것들 중 벽 이미지에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쭉 보다 보니 다른 이미지에 더 끌렸다.

이.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우리에게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알려진 책의 초간본을 프랑스에서 발간했다. 프랑스어로 그 제목은 ‘재빠른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 표지의 디자인을 지인이었던 마티스가 해 줬다. 그런데 그 책은 사진집이 아니라 그냥 미술 화집처럼 보인다. 마티스는 표지에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라는 이름만 밝히고 자신의 전형적인 색면 추상 그림을 쓱 그려 놓았다. 나는 그것을 늘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가 지난해에 있었던 강홍구 미술가의 원앤제이 갤러리 전시를 봤을 때 갑자기 확 끌렸다. 그는 주로 재개발 지역의 담벼락에 쓱 그려 놓아 아주 미묘한 작품을 만드는데 내가 그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표지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두 번 나올 수 없는 재미난 이야기를 할 것이라 판단했다. 사실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전혀 몰랐다. 사진을 많이 보냈는데 선택은 그가 했다.

강. 내가 전권을 행사했다.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이 힘들면서도 즐거웠다.(ㅎㅎㅎ) 뒤표지의 사진에 횃불을 그린 것은 개인적인 이유가 크다. 나는 신안 섬에서 나고 자랐기에 무의식에는 늘 ‘뻘밭’이 있다. 뻘밭의 횃불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여름에 횃불을 들고 게 잡이를 다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끔 방조제가 터지면 사람들이 소리치고 그럼 동네 사람들이 횃불과 멍석을 들고 오는 풍경이다. 나는 어릴 때 그 광경을 툇마루에서 봤고, 그 기억들이 이상엽의 사진에서 툭 떠올랐다. 당시 초병들은 횃불을 세우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경계라든가 이런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횃불을 그렸다. 그다음 내가 자주 가는 북한산 성벽 역시 숙종 때 축조되었지만 단 한 번도 써먹은 적 없었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강화도 돈대는 써 보기라도 했지 북한산 성벽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그곳에 징발된 병사들이 생각났다. 그들에게 보급이 잘 되었을 리 없었을 거다. 요즘 군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배고픔, 추위와 잠 못 자는 것, 선임들의 괴롭힘 이런 것들이 틀림없이 힘들었을 텐데, 그중에서도 배고픔이 맨 처음 떠올랐다. 그래서 밥그릇을 그렸다. 그런데 이상엽 사진가는 왜 이걸 그렸는지 재빨리 읽더라. 나도 뭔가 들킨 기분이었다.

서. 애초 사진집 제작 계획은 이상엽 사진가와 강홍구 미술가의 공동 작업을 앞표지에만 넣으려고 했는데 책 제작 과정에서 뒤표지에도 삽입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런 과정에 대해 IANN의 김정은 편집장이 여러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은(이하 김). 일반적으로 책을 만들 때 표지를 한 개만 만드는데, 이상엽 사진가는 그런 점에서 실험적이었다. 아마 두 사람 모두 표지를 한 장만 쓸 것으로 생각했는데 왜 앞표지와 뒤표지로 쓰게 됐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사실 편집장 입장에서 욕심이 났고,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뒤표지는 그 결말을 짓는 후렴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두 개 다 놓칠 수 없었다. 에피소드처럼 말하자면 오리지널 프린트는 크게 프린트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에디터와 이상엽 사진가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한 점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갖고 싶은 마음이 크겠는가? 거기에 강홍구 미술가가 잊지 않고 본인의 서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상엽 사진가와 탐을 많이 냈다.

 

사진집다운 사진집 변경의 역사

서. 이상엽 사진가는 그동안 글을 써 왔기 때문에 텍스트가 많고 상대적으로 사진이 적은 유형의 책을 많이 출간했다. 그런데 이번 사진집은 글이 많이 줄고 작품 사진 위주로 구성됐더라. 이상엽에게 이것은 굉장한 실험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신작 <변경의 역사>에 관한 글을 원고지 500매에 가까이 집필했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줄여나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나?

이. 첫 단행본을 2001년에 냈다. 2000년부터 포토저널리즘이 아니라 책을 쓰는 작가로 전환하면서 단행본을 내야 했는데 그 당시 단행본은 글 반, 사진 반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없었다. 거의 텍스트였다. 그렇게 최근까지 개인적으로 낸 단행본이 대략 23권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글을 줄이고 오직 이미지로만 책 한권을 만든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더라. 한국 출판계 입장에서도 그 비싼 사진집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23권의 단행본 중 순수한 사진집은 이번 『변경의 역사』를 포함해 두 권뿐이다. 그만큼 순수 사진집은 사진가들도 갖기 어려운 장르의 책이다.

서. 이런 종류의 사진집 제작 과정이 결과물만 보면 단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디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맥락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은 이러한 노력들이 요소요소에 숨겨져 있다.

김. 이상엽은 워낙 글이 많은 사진가다. 르포르타주 사진가로 알려져 있고 워낙 글을 잘 쓰다 보니까 언제나 그의 책은 늘 글이 넘쳐나고 사진의 비율은 상당히 줄어들어 있다. 2014년에 출간한 사진집 『변경지도』(현암사)도 그런 종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사진집이라고 이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상엽에게 사진집다운 사진집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IANN의 성향이기도 하니까. 사진집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지의 구성이 크게 상보성, 목적성, 상대성 세 개로 나뉘어 있다. 애초 이상엽 사진가가 쓴 글의 내용이 3단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받고 나는 읽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과학적 지식과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엽 사진가가 해석한 여러 내용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었고, 독자 입장에서 사진을 이해하는 것과 글을 통해서 사진을 보는 것 사이의 괴리감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여겼다. 사진과 글을 완전히 분리시키기로 하고, 글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무엇보다 기록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었고 그랬을 때 이상엽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굉장히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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