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스펙트럼 Spectrum> no.9 / spring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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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 분야를) 사랑하는가?

2007년 겨울 그다지 춥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화문 근처에 10평 남짓의 작은 원룸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여기가 이안북스입니까?” 무덤덤하게 배송지를 확인하던 우편 배달원 아저씨, 그리고 건네 받은 소포를 열자마자 울음을 한껏 터트린 나. 그 안에는 IANN 창간호 몇 권이 들어있었다.

요즘 서점들을 거닐다 보면 바야흐로 ‘자기계발서 전성시대’이다. <드림 온>,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등, 거친 세상을 먼저 지나온 선배들의 산 조언은 하나같이 꿈을 놓치지 말라며 세상은 최선을 다해 뛰는 자에게 반드시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잘되면 승리를 맛보겠지만, 실패한다 해도 용기 내어 맞서 싸우면 인생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잠시나마 이런 격려와 희망은 불확실한 현실에 쌓인 피로감을 떨쳐 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내가 부족했던 거야’라는 생각에 시달려야만 한다. “나는 정말 이 분야를 사랑하는가?” 부끄럽게도 난 이 질문에 흔쾌한 답하기 어렵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나는 열악한 출판시장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예술이란 콘텐츠가 취향의 부속물로 무의미하게 소비될 때 심리적 박탈감은 더 커질 뿐이다.

사실 타 출판 분야에 비해 예술도서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종종 주변에서 예술도서가 어떤 책이냐고 물을 때면 나는 “전시도록 같은 건데, 일종에 작품집이에요.”라고 어물쩍 넘긴다. 물론 누군가는 출판사 발행인이자 편집장으로서 경영철학이 부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나라 출판시장이 다각화되지 못한 우리 문화와 시스템을 탓하고 싶다. 국내 연간 출판물은 약 5만여 종에 달하며, 실제로 출판사 또는 서점을 통하지 않고 유통되는 출판물까지 하면 거의 6만여 종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작 우리도 모르게 사라지는 책들은 얼마나 된다는 뜻인가? 대부분 거대 온라인 매체, 대형서점 같은 홍보채널는 기하급수로 늘었지만 정작 눈에 띄는 건 유행성 짙은 기획출판물로 도배되고 만다. 대중서, 베스트셀러 축에는 끼지 않아도, 특정 분야의 소비주체자인 독자들이 실제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단연 기업 운영방식의 원인만은 아니다. 사회에 만들어낸 의식, 바로 성공시대라는 거대한 평가사회 안에서 실무진의 열정만으로 ‘꿈’에 매달리기엔 버거운 것이다. 소위 ‘힐링 서적’이나 학습지, 자기 계발서는 요즘 같은 성과사회를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들로 여겨지는 것을 이를 반영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술관이나 홍대, 이태원, 신사동 가로수길 주변으로 확산된 편집샵이나 소형서점에서 근근이라도 독립출판물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이런 변화와 시도들이 앞으로 더 빈번해져 나름의 공동체가 되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왜 여전히 불안한 것일까? 실패가 두려워서 불안한 것일까? 아니다. 출판의 길로 들어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실패는 사치스런 것이다. 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작은 행복감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자기가 일군 결과물들에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 2007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사진잡지를 만들겠다고 당돌하게 말했던 30살의 나를 추억해본다. 갈색 소포꾸러미를 열고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든 첫 번째 책을 보자마자, 왈칵 쏟아냈던 눈물은 뜨거웠다. 그리고 정작 그때 이후로 나는 몇 번의 눈물을 흘렸나? 이제 출판계에 선배가 된 내가 젊은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가슴 벅찼던 첫 감동을 잊지 말라는 조언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김정은
이안북스 대표,
이안매거진 편집장
twitter@iannbooks
www.iannmagazine.com
www.facebook.com/ian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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