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PHOTO+ Exhibition Review <백승우_판단의 보류>

포토플러스_백승우 포토플러스_백승우2

 

판단의 오류와 보류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적힌 ‘Judgement(판단)’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판단의 보류’라는 백승우의 전시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거 참 예사롭지 않은 초입이다. 적당히 멋진 사진이나 둘러보고 나올 요량으로 들어갔다가 이른바 심판, 평가, 비평이란 뜻의 이 단어를 먼저 마주하고 보니 관람자들이 작품을 보기도 전에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어쨌든 내 딴에는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만은 없는 결정적인 요소가 돼 버렸다.

백승우의 신작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전시제목인 <판단의 보류>에 대한 작가의 의도부터 파악해 보자. 이번 전시의 모노그라프로 출간된 <아무도 사진을 읽지 않는다>의 인터뷰에서 백승우는 ‘전시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사진의 객관적 속성과 시각적 관습을 의심케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작품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설명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그는 오히려 이미지에 대한 관람객의 시선이 철저히 뒤틀어져 버렸을 때 자신의 의도가 온전히 읽힌다고 믿는다. 이는 그가 지적하는 이미지의 실체란 ’각자가 만들어낸 허상과 믿음 속에서 수많은 진실로 부유하는 어떤 것’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에 대한 본질적 속성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이를 어떤 식으로 읽고 수용할 것인가를 관람자의 시선에 맡기는 작가의 태도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요즘 시대에 작가들이 퍼붓는 일방적인 작품설명에 설득당하며 묘한 회의감을 느꼈던 내게 이런 발칙한 주장은 자극이 될 터였다. 말하자면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내 어깨를 누르는 압박감은 비평이란 점에서 어떤 도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읽는 방식대로 ‘허상’들을 믿으면 되는 일종의 ‘자유로운 해석’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해석이란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역으로 작가가 조작한 이미지들을 철저히 의심하고 회피하며 끝내 외면하는 것이다.

백승우의 이전 작품들에 익숙한 관람자라면 사진에 대한 일상적 통념이 그가 붙여 놓은 짧은 제목들에 의해 순식간에 해체되는 경험을 맛봤을 것이다. 어김없이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작품제목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먼저 전시장 문 앞에 설치된 작품부터 시작해 보자. <사인보드 Signboard>는 공간적인 특징이나 정보를 최대한 축소시키고 높이 5m 정도의 구조물로 세워 만든 작품이다. 어슴푸레 보이는 건물의 실루엣은 이전 작품의 제목들인 <리얼월드 Real World>, <블로우 업 Blow Up>, <유토피아 Utopia>를 차용해 네온사인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기존 작품제목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 우리가 주목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여기에는 작가의 굴절된 시선이 가장 솔직하게 투영돼 있다. 이는 관람자에게 모든 선택적 권한을 맞기는 게임(play)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사진의 발명 이후 이미지의 범람은 우리에게 사진의 진실성, 객관성, 현실성을 심어준 반면 무작위적인 생산성으로 인해 수많은 다른 의미들도 함께 파생시켰다. 낱장의 사진이 절대적 진실로 통용되던 예전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제 세상은 이미지 한 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실과 허위, 현실과 가상,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등 역설적인 상황을 설정하는 데 기여한 이 제목들은 결과적으로 떠도는 이미지들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매우 반어적이고 동어반복적인 방식으로 그 사이에 수많은 의미의 틈새를 만들면서 말이다. 이런 작가의 전략은 한편으론 마르셸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연상시킨다. 오브제 트로베(Objet trove), 즉 있던 그대로의 일상 생활품을 예술작품으로 인식시키면서 뒤샹은 ‘레디메이드 선택이 미학적 즐거움보다 시각적 무관심의 반응에 근거했다. 그 위에 새겨 넣은 짧은 문장은 제목처럼 오브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관람자의 마음을 좀 더 언어적인 다른 영역으로 옮기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각적 무관심이란 일상용품이 지닌 지극히 사소하며 쉽게 이해되는 것들로 백승우에겐 자신의 작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동일한 모티브로 유통되는 수많은 이미지들이다. ‘오리지널’이라는 원본의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 사진에서 더 이상 예술적 권위를 찾기 힘들다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작품의 생산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결과적으로 창작이란 행위에서 저작권이나 고유성에 대해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다는 것에서 백승우가 택한 생산방식은 스스로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사진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주변에 널려있는 아카이브를 찾기 시작했다. 뒤샹이 ‘예술의 개념적 전환이 무엇을 창작하는 것이 아닌 선택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 지점에서 볼 수 있듯 백승우의 예술적 실천은 사진이 처한 위기를 매우 위트 있게 차용하고 있다.

요즘 흔히들 생각하는 ‘예술사진이 관람자에게 요구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이는 사진이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다시 말해 이미지 안에 복잡하게 짜인 메트릭스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능동적 해석을 통해 이를 이해했다 말하지 않겠나. 하지만 백승우의 작품은 이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읽기’를 시도할 때 우리는 부연설명 글이나 이미지의 유추를 통해 시·공간, 정황, 이미지의 문맥, 시선의 주체 등 다양한 기호를 찾게 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이런 기호와 규칙들이 함정으로 존재한다. 극단적인 예가 바로 도쿄를 배경으로 요일과 시간을 나눠 총 21개의 이미지로 구성한 <세븐데이즈 Seven Days> 시리즈다. 이 연작의 작품캡션을 언뜻 보면 시간과 공간의 분류를 통해 기록한 작품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미지들과 이들 제목들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 제목들은 그가 촬영 전에 분류체계의 방편으로 임의로 정한 것으로 이후 추려진 사진들을 무작위로 조합한 것이다. 결국 관람자가 평소 습관대로 작품의 의도를 찾고자 제목과 이미지 사이에서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낼수록 이것은 해석의 오류를 발생기킨다. 하지만 이를 정말 오류라고 볼 수 있을까? 작품의 언어구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상에 집중하는 것, 다시 말해 이미지의 스펙타클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시선은 어떤가. 우리는 이 또한 이미지 읽기의 오류라고 할 수 있는가. 다음 전시실에 위치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Archive Project> 시리즈는 이처럼 이미지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적 판단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다. 이 시리즈에는 주로 미국의 공장들에서 기록한 기존 아카이브 사진들과 개인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이 새롭게 찍은 한국의 공공기관이나 일부 공장들의 사진이 함께 포함돼 있다. 언뜻 보면 공장의 내·외부를 촬영한 오래된 기록사진처럼 보이는 이 연작들에는 의도적으로 두 장의 사진들을 오려 붙인 것들도 있다. 이들 사진에서 이음새를 발견하기 전엔 전혀 다른 두 장의 사진이란 것을 간과하고 만다. 오히려 이 사진들은 실제 있었을 법한 공장 건물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이미지를 자세히 관찰하기도 전에 그 대상을 섣불리 판단하고 습관적으로 읽어 버리는 인간의 인식 범위는 매우 좁다. 작가는 이러한 한계를 매우 단순 명료하게 조작하고 이미지에 대한 판단기준인 기록, 분류에서 지식의 생산으로까지 향하는 아카이브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게끔 만든다. 또한 두 개의 시간과 장소가 공존하는 이미지는 초현실적인 대상으로 기존의 사용 용도에서 탈맥락화 된다. 오로지 미학적인 관점에서 추구할 만한 대상의 아름다움과 흔적만이 의미 없이 부유한다. 결국 순간의 착각과 혼돈, 환영 같은 모호한 상태에서 관람자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이미지 하나하나를 포착하고 해석하려 든다.

수많은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 사진으로 반대편 세상을 간접경험하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또 서랍장에 고이 간직되던 사진들이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을 떠돌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이로 인해서일까···. 무엇인가를 기억하며 추억한다는 것이 부질 없는 일로 여겨진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던 우리의 손은 이제 마우스를 클릭하며 모든 것을 기억했다 말한다. 과거를 가능한 빨리 기록하고 저장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세상을 넘쳐나는 이미지들로 덮어 버렸다. 하지만 진정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마지막으로 전시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메멘토 Memento>시리즈는 사진의 사적인 기록과 기억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이미지의 세계에 대해 재고하는 작업이다. 작품제목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 기념품이란 맥락에서 이 연작은 앨범 속 기념사진들을 연상케 한다. 기억의 창고로 사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수집하고픈 소품이다. 이 는 사진작가 백승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사진촬영보다 사진수집에 흥미를 느꼈던 작가는 미국에 체류하며 모은 사진이 무려 5만여 장이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슬라이드로 된 가족사진들이 많았는데 이 낱장의 사진들에는 당시 기록된 이름, 장소, 시간 등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이 수집과정에서 백승우는 사진 속 주인공들의 가족관계나 상황들을 유추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문맥적 연결점을 찾는 데 실패하며 사진적 모순에 맞닥뜨린다. 이는 실제로 그 사진을 찍었던 원작자가 아니고서는 이미지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덧붙인 부연설명이나 노트를 통해 어떤 사실이나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기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런 정보들이 이야기의 혼선을 초래하며 전혀 다른 새로운 지점에서 의미화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이 뜻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의 목적(기억, 연구, 기록 등을 하고자 한 어떤 의도)은 원작자가 사라짐으로써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작자의 부재는 곧 사진의 죽음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남겨진 대상의 흔적은 현실의 파편이자 폐허의 모습으로 부유할 뿐이다. 이런 사진의 속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참여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메멘토 Memento> 시리즈다. 백승우는 1차로 수집한 사진들에서 2700여 점의 사진들을 선별하고 작가를 포함한 8명의 사람들에게 8장의 사진을 각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도록 요청한다. 이렇게 선정된 최종 사진들에는 그들 나름대로 장소나 시간, 글을 적도록 한다. 말하자면 사진에 기입된 글들은 최초의 원본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층위의 문맥적 상황을 연출한다. 관람자들이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마주하는 64장의 이미지와 그 밑에 적힌 작은 글씨의 캡션들은 이미지를 읽는 단서이면서 동시에 원본의 상태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일종의 덫이다. 한편 이 연작이야말로 작가가 사진을 수집하고 채택해 기록하는 일종의 창작과정 속에서 경험했던 모순을 선택된 8명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토록 한 작품이다.

사실 이 전시는 근본적으로 8명의 사람에 한해 어떤 경험을 제공한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관람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에서 예술에 대한 지적인 사색을 요구하는 데 있다. 또 스스로 ‘본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행위와 다르다. 의혹을 제기하기보다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안이한 태도는 사진이라면 으레 생각하게 되는 사고의 틀을 보다 견고하게 만들지 않았나. 결국 백승우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에서 사진을 다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이러한 동기부여는 본질적으로 작가 본인이 빠진 판단의 오류에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전시 오프닝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전시제목을 고민하면서 맨 처음 떠올렸던 것은 <판단의 오류>였어요. 하지만 그 지점이 모호하더라고요. 결국 판단을 보류키로 했지요.” 나는 이 지점에서 작가의 창작행위가 자기비판적이고 재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왜 그의 이미지를 보며 어떤 감상이나 감정에 빠질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류와 보류’ 사이에 이미지는 계속적으로 부유할 뿐 잡히지 않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답도 내기 힘든 <판단의 보류>라는 말장난에는 이 게임에 동참할 것을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이 게임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능동적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김정은

2006년 영국 런던의 미들섹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동대학원에서 미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10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포트폴리오 리뷰어로 활동했으며 ,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출판사 ‘이안북스’의 대표이자 예술사진 전문잡지 ‘이안매거진’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mojikim@gmail.com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Header Goes Here Make it effective and short

  • List Item #1
  • List Item #2
  • List Item #3

Sub- Heading Text Goes here Tease them